2026 월드클라이밍 (미국)솔트레이크시티 여자 볼더 결승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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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월드 클라이밍 시리즈 솔트레이크시티 여자 볼더링 결승전은 맥스 에어턴(Max Ayrton, 영국) 수석 루트세터와 호리 츠쿠루(일본), 미즈구치 츠카사(일본), 조던 그랜트(호주) 세터진이 출제했습니다.
이번 결승전 4개 과제는 ① 코디네이션 스윙, ② 순수 파워 블록, ③ 무마찰(Zero-Friction) 슬랩, ④ 다이나믹 점프 및 베타 브레이킹으로 각 과제의 스타일이 극단적으로 분리된 것이 특징입니다. 승패는 1번 과제의 유일한 완등(오리안 베르톤)과 4번 과제에서 세터의 의도를 깬 '발 먼저 보내기(Feet-First)' 공략법에서 갈렸습니다.



[기자수첩] 글루건으로 막은 볼트 구멍과 0.1점의 미학… 솔트레이크시티 야구장을 달군 ‘베타 브레이킹’의 밤
[부제] 2026 월드 클라이밍 시리즈 솔트레이크시티 여자 볼더링 결승 현장을 가다
고깔모자 쓰고 시작된 축제, 매트 위에선 숨 막히는 수 싸움으로
오리안 베르톤, 압도적 실행력으로 왕좌 귀환… 에린 맥니스는 0.1점 차 시즌 종합 챔피언 등극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야구 경기장인 스미스 볼파크(Smith's Ballpark)에 10월의 차가운 밤공기가 내려앉았다. 통상 무더운 여름철에 치러지던 볼더링 시리즈와 달리, 시즌 대미를 장식하는 이번 결승전은 선수들이 패딩과 담요를 두르고 손가락의 온기를 지켜야 할 만큼 쌀쌀한 날씨 속에 열렸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 무대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결승에 오른 8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알록달록한 생일 고깔모자를 쓰고 등장한 것이다. 대회 운영을 총괄한 미국 클라이밍계의 전설 트레버 클레이(Trevor Clay) 이벤트 디렉터와 결승 진출자 마츠후지 아논(일본)의 생일을 동시에 축하하기 위한 깜짝 이벤트였다. 오리안 베르톤(프랑스)은 모자를 두 개나 겹쳐 썼고, 세키카와 멜로디(일본)는 직접 만든 축하 현수막을 펼쳐 보이며 관중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나 고깔모자를 벗고 초크 백에 손을 넣는 순간, 야구장 특설 무대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차가운 전장으로 돌변했다.
‘실행력의 여왕’ 오리안 베르톤, 모두가 빠져든 함정을 홀로 넘다
이번 대회 수석 루트세터 맥스 에어턴(Max Ayrton·영국)을 필두로 한 세터진은 결승 4개 과제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분리해 선수들의 종합적인 등반 지능을 시험했다.
승부의 추는 시작과 동시에 제1과제에서 기울었다. 큰 진자 반동(스윙)으로 존(Zone·중간 득점 홀드)을 잡은 뒤, 손으로 잡을 곳 없는 슬랩(경사가 완만한 벽)을 발로만 딛고 일어서야 하는 고난도 코디네이션(협응력) 문제였다. 앞서 등반한 7명의 선수들은 두 가지 함정에 발목을 잡혔다. 초반 스윙에서 골반을 벽에 붙이고 반동을 주는 일명 ‘프렌치 스윙’을 시도하다 거리가 짧아 미끄러졌고, 가까스로 존을 잡은 뒤에도 첫 번째 빨간색 발 홀드에서 양발을 모으려다 다음 동작의 추진력을 잃고 추락했다.
가장 마지막 순번으로 매트에 오른 오리안 베르톤 역시 초반에는 같은 함정에 고전했다. 그러나 남은 시간 1분을 앞두고 완벽하게 해법을 수정했다. 스윙의 궤적을 과감하게 넓혀 단숨에 존 홀드 위를 눌러 잡았고, 상단에서는 멈추지 않고 오른발을 연속으로 두 번 내딛으며(Right-Right 스텝) 수직으로 튀어 올라 검은색 볼륨 위에서 중심을 잡아냈다. 8명의 결승 진출자 중 유일한 완등(24.6점)이었다. 이어진 2번 파워 과제마저 단 한 번의 시도(플래시·Flash)로 가볍게 완등한 오리안은 탑 홀드에서 여유롭게 무릎을 끼우는 ‘니바(Knee-bar)’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일찌감치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벌렸다.
글루건으로 막힌 틈새, 그리고 세터의 의도를 부순 ‘발 먼저 보내기’
이번 결승전은 루트세터와 선수들 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백미였다. 대표적인 장면이 ‘Stay Classy’라는 이름이 붙은 3번 슬랩 과제였다. 세터진은 선수들이 벽 구조물의 미세한 틈새나 홀드 나사 구멍(볼트 홀)에 손끝을 걸어 버티는 변칙 등반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경기 전 글루건(접착제)으로 벽 모서리와 나사 구멍을 전부 메워버리는 치밀함을 보였다. 게다가 파란색 볼륨 중앙에 부착된 주황색 원형 디스크 홀드는 마치 물에 젖은 듯 마찰력이 전혀 없어, 슬랩의 강자 나카무라 마오와 홈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애니 샌더스(미국)조차 속수무책으로 미끄러졌다. 결국 3번 과제는 단 한 명도 완등을 허락하지 않은 채 전원 존 획득(10점)으로 막을 내렸다.
반면 마지막 4번 과제 ‘Candyland’에서는 선수들의 반격이 빛났다. 세터진이 설계한 원래 의도(오리지널 베타)는 몸을 회전시켜 존을 잡은 반동 그대로 노란색 홀드를 양손으로 치고, 멈추지 않은 채 흰색 홀드까지 두 번 연속 점프해 날아가는 다이나믹 무브였다. 첫 주자로 나선 오세아니아 맥켄지(호주)가 정석대로 점프를 시도했으나, 노란색 홀드가 겉보기와 달리 턱이 없는 납작한 경사면(슬로퍼)이어서 반동을 버티지 못하고 추락했다.
이때 두 번째 주자 나카무라 마오가 세터의 의도를 깨뜨리는 ‘베타 브레이킹(Beta Breaking·출제자의 의도와 다른 창의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것)’을 선보였다. 마오는 노란색 홀드에서 무리하게 뛰지 않고 일단 몸을 멈춰 세운 뒤, 다음 흰색 홀드 쪽으로 손 대신 두 발을 먼저 뻗어 걸고(Feet-First) 안전하게 체중을 넘기는 방식을 택했다. 이 기발한 파훼법이 등장하자 대기실의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다. 뒤이어 등반한 아얄라 케렘(이스라엘), 에린 맥니스(영국), 애니 샌더스, 세키카와 멜로디, 그리고 오리안 베르톤까지 완등자 6명 전원이 세터가 의도한 점프 대신 마오가 개척한 ‘발 먼저 보내기’ 공략법을 채택해 완등 행진을 벌였다.
단 한 번의 시도 차이가 만든 0.1점의 비극과 환희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개척한 공략법이 나카무라 마오의 메달 색깔을 바꾸는 부메랑이 됐다. 마오는 4번 과제 첫 시도에서 노란색 홀드 스윙을 한 번 놓친 뒤 두 번째 시도에서 이 파훼법을 완성해 완등(24.9점, 총점 69.6점)했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한 영국의 에린 맥니스는 처음부터 흔들림 없이 이 방식을 적용해 첫 시도(플래시, 25.0점) 만에 완등을 뽑아냈다. 두 선수는 1~3번 과제까지의 점수 구성이 완벽히 똑같았으나, 마지막 4번 과제에서 나온 단 한 번의 시도 횟수 차이(0.1점)가 에린 맥니스(69.7점)에게 은메달을, 나카무라 마오(69.6점)에게 동메달을 안겼다. 이 결정적인 플래시 하나로 맥니스는 오세아니아 맥켄지와 애니 샌더스의 추격을 뿌리치고 2026 시즌 볼더링 종합 우승(4,545점) 트로피까지 품에 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쏟아붓는지 모른다”
이날 경기의 대미는 오리안 베르톤과 그의 친오빠 막스 베르톤(전날 남자 결승 5위)이 장식했다. 3번 과제부터 특별 객원 해설로 중계석에 앉은 막스는 동생의 등반 내내 의자 위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며 “심장마비가 올 것 같다”고 손에 땀을 쥐었다. 오리안이 4번 과제 마지막 홀드에 왼손을 얹으며 84.6점으로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 막스는 헤드셋을 벗어던지고 무대 앞으로 달려 나가 동생을 뜨겁게 끌어안았다.
지난 2023년 프라하 월드컵 이후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월드 시리즈 정상에 선 오리안 베르톤은 우승 인터뷰에서 “드디어(Finally) 해냈다”는 진행자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묵직한 한마디를 남겼다.
“‘드디어’라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어요. 이 무대 뒤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노력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 금메달을 딴 선수뿐 아니라 결승에 오른 선수들, 그리고 올 시즌을 함께 뛴 모든 선수들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많이 갈아 넣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겁니다.”
화려한 야구장 조명과 신나는 음악, 그리고 장난기 어린 생일 모자 뒤에는 0.1점을 줄이기 위해 손끝이 찢어지도록 벽을 부여잡은 선수들의 치열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이 ‘월드 클라이밍(World Climbing)’으로 이름을 바꾸고 맞이한 2026년 볼더링 시즌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선수들의 땀방울과 서로를 향한 존중 속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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